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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을치유하는글모음

풀어야 산다 시리즈, 변화로 풀어라

by grace7 2023. 12. 2.

1. 변화를 갈망하는 인생

나는 하나님이 안 계셨다면 저는 한 번밖에 못 사는 이 세상, 재미있는 것이라면 뭐든지 다 할 것이고, 기분 좋은 것이라면 뭐든지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안 계시다면, 이 세상이 전부라면 마음껏 만져보고, 느낄 수 있는 것은 죄다 느껴보고, 보고 싶은 것은 뭐든지 다 보고,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모두 다 하면서 살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저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어 새롭게 되고 영적으로 성숙해지기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요소가 필요합니다. 

바로 하나님을 자꾸만 알아가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을 자꾸만 알아가면 그분의 사랑을 더욱 체험하게 되며. 우리의 삶의 목적이 달라지고, 가치관이 달라지고, 심령이 달라지고, 생각이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2. 변화되지 못한 자의 내면 세계 

​저는 열방대학의 훈련을 통해 내면이 새로워지는 변화를 체험했습니다. 

이 훈련을 받고 변화되기 전에도 저는 신학원에 다니며 제자를 양육하는 열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열심은 진정한 변화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성경 정보와 내용을 전할 수는 있었지만 삶에서 전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영접했지만 진정한 변화를 받지 못한 내면세계가 변화되지 못한 자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첫째,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합니다. 
소위 ‘잘 믿는’ 크리스천들이 빠질 수 있는 함정 중의 하나가 바로 이 형식’입니다. 

저 역시 바로 이 형식에 매여 있었던 사람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큐티(QT)를 합니다. 성경을 읽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어도 의무적으로 억지로 숙제하듯이 읽었습니다. 

졸릴 때는 짜증을 내면서 읽습니다. 

도표를 따라 찾아 읽고 또 씁니다. 

적용할 것을 쓰고, 기도 내용을 쓰고, 다 마치면 어떻게 합니까? 

성경책을 덮으면서 “아! 다했다”고 합니다. 

하루의 숙제를 마친 것입니다. 

가슴 깊은 데서 우러나오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없이 한다면 그것은 껍데기입니다. 

갖은 폼을 다 잡아도 그것은 껍데기이고 형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모습을 너무나 슬퍼하십니다. 

​둘째, 다분히 감정적인 사람이 되기 쉽습니다. 
감정이 오르락내리락 합니다. 어지러울 정도입니다. 

집회나 수련회에서 은혜를 받으면 순간 뜨겁고 감정에 북받쳐 눈물을 흘립니다. 

그러나 그 뜨거움이 약 2주면 푹 가라앉아 버립니다. 

셋째, 애정 결핍의 모습이 있습니다. 
애정 결핍 상태의 사람은 누군가의 인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사역자들은 성도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사역자란 하나님께 사랑을 공급받을 뿐만 아니라 그 사랑이 넘쳐흘러서 성도들에게 그 사랑을 전해주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메마른 가슴으로 설교해놓고 성도들한테서 사랑을 구하느라 헐떡이는 격입니다. 

넷째,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합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비성경적인 관점을 가졌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의 부정적인 생각을 말씀을 통해 치유해주셨습니다. 

하루는 시편 139편 말씀을 읽다가 제 자신을 향한 자기 증오와 외모에 대한 증오가 치유되는 역사를 경험했습니다. 

​"주께서 내 장부를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 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시 139:13~14). 

상황보다 중요한 것은 시각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 시각이 바뀝니다. 

다섯째, 불건전한 관계를 갖게 됩니다. 
인간관계에 죄가 스며듭니다.

교인들을 상담하다보면 불건전한 관계에 대한 경위가 밝혀질 때가 있습니다.

 마음이 다루어지지 않으면 이러한 죄악된 관계를 은밀히 즐길 수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만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 들어가면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하나님 안에서 우리의 심령이 채워지면 죄악된 관계를 끊을 수 있게 됩니다. 

쓸데없는 집착을 버릴 수 있습니다. 

말씀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상한 마음을 치료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여섯째, 나쁜 습관이 있습니다. 
이런 나쁜 습관에는 교회 중직자도 예외가 아닙니다. 

흥청망청 술 마시고, 노래방에 가서 별난 노래 다 부르며 스트레스 푸는 나쁜 습관들이 있습니다. 

 

저는 예수님 안에서 변화되기 전에 폭식하는 나쁜 습관이 있었습니다.
울적하면 먹고, 외로우면 먹었습니다.

나중에 깨달았습니다만 그것은 공허함을, 외로움을 먹는 것으로 채우려 했던 저의 모습이었습니다.

또 저는 영화를 무분별하게 봤습니다.

 

개중에 도박이나 포르노 같은 나쁜 습관에 얽매인 분들이 있습니다. 
왜 이렇게 됩니까?

우리 마음에 주님을 닮아가지 않는 모습이 있기 때문에 그런 죄를 즐기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워지지 않으며, 닮아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치유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운데 어떤 나쁜 습관이 자리 잡고 있는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일곱째, 신체적 질환이 발생합니다. 
우리의 내면이 치유되지 않으면 우리는 쉽게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스트레스를 받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속에 담고 살아갑니다.

​또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할 때, 미워할 때, 그 마음 자체가 다루어지지 않을 경우 질병으로 이어지는 것을 종종 목격합니다.

지금 누군가를 미워하고 계십니까?

당신의 마음에 원망이 가득 차 있습니까?

그분들을 용서하십시오.

그래야 몸이 건강해집니다. 

​여덟째, 불건전한 생각이 망상으로 발전하고 자꾸만 상상의 날개를 폅니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에 음란한 생각까지 품게 되면서 밤낮 쓸데없는 생각에 빠져 지내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사람들입니까?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시켜야 합니다.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고후10:5). 후회와 염려를 많이 하는 사람은 현실을 놓칩니다. 과거에만 머물게 됩니다. 그러나 인생은 지금입니다. 지금이 소중합니다. 

아홉째, 마귀에게 틈을 줄 수 있습니다. 
누군가 귀신들렸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귀신에게 나가라고 명하기 전에 그 사람에게서 귀신이 틈을 탈 수 있는 요소를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도록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누군가를 용서하지 않았거나 분노를 품은 일도 이에 해당합니다. 

사도 바울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엡 4:26~27).

분노를 품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우선 자신의 분노를 하나님 앞에 아뢰십시오.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해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용서를 받으십시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받은 요소를 용서하는 기도를 합니다. 

그런 다음 귀신에게 나가라고 명하십시오. 

그러면 귀신이 쉽게 떠나갑니다. 

우리가 할 일은 회개와 용서입니다. 

또, 자신도 모르게 행하고 있는 나쁜 습관이 있다면 마귀에게 틈을 주는 부분은 무엇인지 기도하면서 자신을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을 알아야 변화된다 

우리 역시 새로워져야 합니다.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변화 받고 새로워지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알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누구를 안다고 할 때는 그에 대한 정보만 갖고 있는 게 아니라 그와의 만남이 있고 교제가 있는 것을 말합니다.

히브리어로 '안다’는 말은 '야다'(yada)입니다.

그 단어의 의미는 정보를 가지고 얘기하는 정도의 '안다'가 아닙니다.

히브리어에서 '안다'의 의미는 만나고 경험하는 친밀한 관계를 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만나는 체험을 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확신이 있는 신앙을 갖게 되고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저 역시 한동안 하나님에 대하여 아는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율법주의 아래서 하나님에 대해 알았습니다. 

정보를 많이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입니까? 가슴이 공허했습니다. 

머리는 꽉 찼지만 하나님과 인격적인 만남과 교제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허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신앙생활이 지겨워졌습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알 때는 지겹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아가고, 하나님과 만남을 갖게 되고, 살아 계신 하나님과 교제하게 될 때 신앙생활은 지겨운 것이 아니라 즐거워집니다. 

우리가 새로워지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알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주님은 우리에게 "너희는 나의 친구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머리로만 아는 정보성 신앙이 아니라 심령 깊은 데서 하나님을 알아가는 귀한 신앙을 소유하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을 알아갈 수 있습니까? 

첫째, 시간을 드려야 합니다. 
친구끼리 더욱 친해지고 서로 잘 알아가려면 시간을 같이 보내야 됩니다. 

마찬가지로 주님과도 그래야 합니다. 

주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외면하기 쉽습니다. 

주님을 인격적으로 친구로 대한다는 것은 마치 투명인간을 대하는 것과 같습니다.

늘 주님과 같이 있다고 인정하면서 주님과 시간을 가지고 대화하는 것입니다. 

주님과 같이 시간을 보내십시오. 

주님과 같이 있어보십시오. 함께 이야기를 나눠 보십시오. 

성경을 읽다가 이해가 되지 않으면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이것이 이해가 안 됩니다." 

저는 성경을 읽으면서 무언가를 꼭 깨달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나 중심의 태도를 내려놓은 그날부터는 말씀을 읽을 때 마음에 깨달음이 있든 없든 주님 한 분만을 사모하며 그분 발 앞에 머물기로 했습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엄마가 마냥 좋아서 그저 엄마와 같이 있고 싶어서 다가오듯, 연인들이 꼭 무언가를 해서 좋은 것이 아니라 단순히 함께 있는 것 자체를 행복해 하는 것처럼 우리도 우리 영혼의 연인이신 주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입니다. 

꼭 무엇인가 해야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함께하고 싶은 만남입니다. 

둘째, 마음을 드려야 합니다.
"주님! 사랑해요. 주님, 주님을 더욱 사랑하기 원해요. 제 마음 깊은 데서 뜨겁게 주님을 사랑하기 원해요." 

이렇게 고백해보십시오. 

하나님과 시간을 보내면서 진정한 마음을 드릴 때 저는 마음이 진짜 흥분됩니다.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헌금을 많이 드리고, 성경을 암송하고. 전도하고, 봉사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의 열매일 뿐입니다. 

교회에 와서 예배드릴 때마다 몸만 와서 앉아 있습니까? 

마음을 다하여 주님께 나아가십시오. 

마음으로 주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뿌듯해지고 기쁩니다.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사랑은 두려움을 내어 쫓기 때문입니다. 

셋째, 물질을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당신의 영혼에 변화가 일어나서 하나님 안에서 힘을 얻으면 당신은 값비싼 향유를 주님께 드린 여인처럼 주님께 기쁨으로 시간을 드리고, 몸을 드리고, 물질을 드릴 수 있습니다.(눅 6:38) 

넷째, 봉사하고 구제하며 하나님을 체험해야 합니다. 
우리는 봉사하면서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믿고 나서 공부하는 자세가 달라졌습니다. 

공부를 잘 하면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무언가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믿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을 섬기며 삽시다.

우리 자신만 위해서 살지 맙시다. 축복하며 살아갑시다.

우리나라의 많은 엄마들이 내 자식. 내 새끼만 잘되면 그뿐이라는 생각이 강합니다.

다른 집 아이들은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이 내 자식, 내 새끼만 잘되면 된다는 생각은 잘못입니다. 크리스천이라면 당연히 다른 집 아이들도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나라가 잘되고 복음이 전해지기 때문입니다. 

다섯째,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제자됨의 표시는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려라."(요 13:34~35) 

우리는 변화되어야 합니다. 마음이 새롭게 되면서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변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믿고도 변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뭔가 잘못됐습니다. 

병들어 있는 신앙입니다. 

사도 바울도 이같이 말했습니다.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고후 4:16)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날마다 변화되어야 합니다.